화폐의 기원과 역사
선사시대에는 조개껍데기가 화폐의 역할을 하였다. 이때 조개껍데기는 가치 저장의 역할보다는 신뢰를 교환하기 위한 증표의 역할, 즉 교환의 기능을 하였다. 화폐의 가치 저장 역할이 중요해진 것은 국가의 개념이 생기면 서부터이다. 국가는 조세를 거둬 보관하여야 하므로 이를 위한 가치 저장의 기능을 수행할 화를 발행하게 되었고, 이것이 화폐의 시작이다. 동서양의 국가들은 금을 직접 화폐 롤 이용하였다. 리디아 제국의 리디아 금화, 동로마제국의 솔리두스 금화, 베네치아의 두카트, 피렌체의 플로린 등 이탈리아 도시 금화, 이슬람권의 디나르 금화, 영국의 소버린 금화 등이다
중세의 그림에는 화폐가 상징적인 방식으로 그려졌다. 대표적인 형상은 지옥으로 가는 부자의 목에 걸린 돈주머니이다. 12세기의 유명한 원고 유원지(Hortus deliciarum)의 한쪽에는 배신의 대가로 30디나르를 받고 예수를 파는 유다의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중세시대에 화폐는 교회로부터 탐욕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도덕적으로 비판을 받기도 했다
로마제국은 기독교 교리에 제한되긴 했지만 중요한 화폐 사용법을 물려주었다. 서구 사회는 동방 세계에 각종 원자재(나무, 철, 노예)를 넘겨주었고, 그 대가로 금화를 받았다. 동방 세계와 대규모 거래를 함으로써 서구 사회에서는 금이 비잔틴 화폐와 이슬람 화폐 형태로 유통되었다. 이러한 화폐들은 통치자들을 부유하게 해 주었다
6기 말부터 7세기 초 주화에는 왕에게 허가받은 화폐 제작자의 이름이 실렸으며, 이들의 수는 점점 늘어났다. 화폐 제작자는 궁의 관리들, 도시의 금은 세공사들, 주교, 대영지 소유자들이었다. 심지어 떠돌아다니는 화폐 제작자들도 있었고, 갈리아 지방에는 ‘트리엔스’라는 화폐를 주조하는 화폐 제작자의 수가 1,400명이 넘었다
중세 교회와 수도원은 현금으로 받은 십일조와 교회 영지 개발로 얻은 화폐를 대부분 유통하지 않고 쌓아두었다. 주화와 거기 들어 있는 귀금속, 금괴와 은덩이는 세공품으로 변형되었는데 교회와 수도원의 수장고에 들어 있는 금은 세공품은 일종의 통화 보유고가 되었다. 화폐가 필요할 경우 이 금은 세공품을 녹여 화폐를 만들었다. 이런 관행이 교회를 넘어 대주주와 국가를 통치하는 왕에게까지 확대됨으로써 중세인들은 화폐 부족으로 곤란을 겪기도 했다.
14세기 무렵 유럽의 화폐는 금화, 은화, 구리 동전 이렇게 3가지 등급으로 나누어졌다. 금화는 귀족과 대상인들의 전유물이었고, 소수의 엘리트만이 사용했다. 대부분 시민은 중요한 물품을 사는 용도로만 은화를 이용했으며, 일상 화폐는 구리 동전이었다.
중세에는 기축통화가 없었다. 각 국가 또는 도시마다 고유 화폐가 존재하였다. 상거래와 국제교역이 늘어감에 따라 이런 화폐들의 교환을 돕는 환전상이 생겨났다. 이탈리아에서 환전상들이 앉아 있는 장소를 ‘Banco(벤치)’라고 불렀는데 이것이 ‘Bank(은행)’의 어원이다. 각구은 주요 생산품이 달랐고 화폐가 달랐다. 환전상들은 이런 각각의 화폐를 교환하는 활동을 했다. 마치 오늘날 각기 다른 암호화폐를 환전해주는 암호화폐 거래소처럼 말이다. 뚜렷한 기축통화 없이 나라, 도시, 지역의 특성에 따라 각기 다른 생산품들과 함께 여러 화폐가 통용되던 중세시대처럼, 암호화폐 시대 역시 각각의 특성에 따라, 1,400여 개의 암호화폐가 만들어져 거래되어 있다. 이런 점에서 암호화폐는 ‘중세의 화폐’라고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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